가원박물관 역사의 변천

1850-1978년

도광 30년(1850) 7월, 장경수는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원을 건립했습니다。

1855년부터 1864년까지 영남의 유명한 화가 거소와 거렴은 장경수를 따라 막료로 10년간 가원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몰골(沒骨), 당수(撞水), 당분(撞粉) 화조 기법을 보완하고 전파했습니다。

청나라 말기에 장백극(張伯克, 가원 장씨 4세)은 임직면(林直勉), 이문보(李文甫) 등을 초청하여 가원에서 반청 선전 활동을 준비했습니다. 장백극은 납치된 척하였고, 가원에서 5,000여 대양을 받았으며 신군 봉기를 지지했습니다。

1949년 10월 동관이 해방된 후, 토지 개혁 당시 가원은 농민 주택으로 분할됐습니다。

1950년대에 가원은 박하촌 경로당으로 변경됐습니다。

1961년 동관현 인민정부는 가원 복원에 착수했습니다。

1964년, 광동성 당서기 도주(陶铸)의 보살핌으로 동관현 당서기 임약(林若)이 직접 가원 복원 작업을 이끌었습니다。

1966년 초에 완공되었으며 가원은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1966년 10월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어 가원은 문을 닫았습니다. 문화대혁명 초기 사자상누대(獅子上樓臺), 배월대(拜月臺), 자수대(滋樹臺)는 철거됐습니다。

1970년대에 가원은 화교 여행사로 변경되었습니다。


1979-2008년

1979년에 가원 관리소는 공식적으로 설립되어 동관현 문화국의 관리로 지정되었습니다. 2년간의 보수 후 1981년에 방문객을 접대하기 위해 정원을 다시 열 수 있었습니다。

1989년에 동관가원은 광동성 문화재보호단위로 지정되었습니다。

1998년 9월 11일 동관시 정부 합동회의는 동관시 가원 관리소를 '동관시 가원박물관'으로 개칭하기로 결정하고 11월 1일 현판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1년 7월 18일 국무원은 동관시 가원박물관을 5차 국가핵심문화재보호단위로 발표했습니다。

2008년 4월 22일 가원박물관 신관이 개관식을 진행했습니다。